[이슈분석] 삼성 "재판장에 재심리 요구… 번복 없으면 항소"
디자인· 통신 기술 등 한국판결과 정반대 “삼성전자는 애플의 디자인을 침해했지만, 애플은 삼성전자의 통신 기술을 침해하지 않았다.” 24일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배심원단이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소송에 대해 내린 평결을 요약하면 이렇다. 9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이번 평결에서 두 가지 주장에 대해 입장을 내놓아야 했다. 하나는 “삼성전자가 애플 제품의 디자인과 사용 환경(UI) 7건을 침해했다”는 애플 측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애플이 삼성전자의 통신 기술 5건을 침해했다”는 삼성전자의 주장이다. 배심원단은 애플의 주장은 모두 인정하고 삼성 주장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심원단은 또 삼성전자에 대해 10억4934만3540달러를 배상하라고 했다. 애플이 주장한 디자인 도용은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형태의 외관 ▶직사각형 틀을 둘러싼 베젤(bezel, 테두리 장식) ▶앞면에 있는 직사각형 모양 화면 ▶화면 윗부분의 좌우로 긴 스피커 구멍 같은 디자인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애플의 디자인이 소니의 기존 제품을 모방한 것”이라며 맞섰다. 아이폰을 디자인했던 신 니시보리 전 애플 디자이너를 찾아가 “소니 디자인을 참고했다”는 증언까지 받아냈지만, 배심원단은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배심원단의 이 같은 평결은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에 근거한 것이다. 트레이드 드레스란 다른 제품과 구별되는 외향이나 느낌을 뜻한다. 트레이드 드레스를 설명할 때 대표적 예로 자주 등장하는 게 코카콜라 병이다. 허리가 잘록한 병을 보면 코카콜라를 떠올리듯 전체적인 외관 디자인을 보고 특정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 디자인은 특허로 볼 수 있다는 게 트레이드 드레스다. 삼성은 기술을 문제 삼았다. 3세대(3G) 무선 통신 기술, e-메일 전송 기술 등 특허 5건을 애플 제품이 침해했다고 삼성전자 측은 주장했다. 애플은 이에 “삼성이 ‘프랜드(FRAND)’ 선언을 하고서 권리를 남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프랜드는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의 줄임말로, 특정 특허 기술이 표준기술로 인정되면 특허권자에게 일정한 사용료를 내는 등의 협의를 통해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배심원단은 “삼성이 무선통신에 필수적인 표준 기술을 근거로 시장을 독점하려 한다”며 삼성 주장을 기각했다. 배심원의 이런 평결은 24일 서울중앙지법이 내린 것과 거의 정반대다. 서울중앙지법은 디자인과 관련, “애플 제품이 나오기 전에 출시된 LG전자의 프라다폰 등에서도 유사한 디자인이 적용됐다”며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삼성 특허권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애플에 손해배상 책임까지 물었다. 삼성전자가 프랜드 선언을 했다고 해도 기술을 사용하는 쪽에서 합당한 사전절차를 밟지 않으면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애플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배심원단이 도둑질은 올바르지 않다는 강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표명한 데 갈채를 보낸다”고 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번 평결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업계 혁신을 가로막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1-구글이 삼성에 보낸 이메일이 결정적 역할 삼성이 애플의 일부 특허를 고의로 침해했다고 판단한 미국 배심원단 평결에 구글이 삼성에 보낸 이메일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벨빈 호건(67) 배심원단 대표는 25일 삼성의 특허 침해가 고의적이었는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2010년 구글과 삼성 경영진 간 내부 이메일 내용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구글은 2010년 2월 삼성에 이메일을 보내 애플 제품과 덜 비슷하게 보이도록 디자인을 수정하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건은 “삼성 고위층이 실제로 베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하고, 구글의 메모를 보고 고의성을 확신했다고 덧붙였다. #2-최종배상액 루시 고 판사가 결정/삼성, 결과 안 뒤집히면 항소키로 이번에 나온 결론은 배심원단 평의를 거쳐 내린 '평결'이다. 1심의 최종 판결은 루시 고(43·사진) 재판장이 배심원들의 평결을 검토한 뒤 직접 내린다. 고 판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 이름은 고혜란이다. 고 판사는 2006년 변호사 시절, 애플 아이팟이 음악플레이어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한 크리에이티브테크놀로지의 소송을 맡아 1억 달러짜리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삼성 측은 배심원들의 평결에 대해 재판장에게 이의신청과 재심리를 요구할 계획이다. 재판장은 이의신청 내용이 타당한지, 배심원들이 검토한 증거 가운데 잘못된 내용은 없는지를 검토한 뒤 1심 최종 판결을 내린다. 미국 법원에서 배심원의 평결을 재판장이 뒤집는 경우는 흔치 않다. 삼성전자는 이럴 경우 항소할 계획이다. 항소심은 1심과 달리 배심원들이 아닌 판사들이 직접 판단을 내린다. 항소심은 1심 결과를 놓고 절차와 법리를 따지는 법률심일 뿐 새로 사실관계를 따지지는 않는다.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은 배심원 평결의 후속 절차로 다음 달 20일 삼성전자 제품의 미국 내 판매금지 심리를 열 예정이다.